그 아이는 나를 기억할까요: 이름과 기억, 그리고 앞으로의 생명
「그 아이가 평안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멈출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면, 그 아이가 저를 알아볼까요?」
이 질문 앞에서 성경은 우리가 바라는 만큼 시원하게 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에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망각'이 아닙니다.
1. 그 아이를 지으신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사야 43:1
"But now thus saith the LORD that created thee, O Jacob, and he that formed thee,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thee, I have called thee by thy name; thou art mine."
이 구절의 순서를 보세요. 지으시고, 빚으시고, 속량하시고, 그리고 나서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부르는 일은 결코 형식이 아닙니다. 「너는 어떤 분류가 아니다. 너는 바로 이 하나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입니다.
시편 기자는 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시편 147:4
"He telleth the number of the stars; he calleth them all by their names."
별 하나하나에 이름이 있다면, 「그 아이는 이름 없는 짐승으로 정리되었을 뿐이다」라는 두려움은 사실이 아니라 오해입니다. 그 아이는 언제나 하나님께 고유한 존재였습니다. 당신이 붙여 준 이름이 그 아이의 유일한 이름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2. 거기에는 책이 있고, 그 책은 얇지 않습니다
말라기 3:16
"Then they that feared the LORD spake often one to another: and the LORD hearkened, and heard it, and a book of remembrance was written before him for them that feared the LORD, and that thought upon his name."
그분 앞에 기록된 기념 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마지못해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기록을 남기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그 기록을 더 앞으로, 생명이 시작되기도 전으로 끌어올립니다.
시편 139:16
"Thine eyes did see my substance, yet being unperfect; and in thy book all my members were written, which in continuance were fashioned, when as yet there was none of them."
아직 아무것도 없었을 때부터 그 모두가 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비뚤어진 작은 이빨도, 끝내 서지 않던 귀도, 한쪽 발에 있던 색 반점도, '그럼에도 사랑한' 세부가 아니라 먼저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우신가요. 하지만 그 아이는 당신의 기억에만 맡겨져 있던 것이 아닙니다. 페이지가 빠지지 않는 책 안에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그 아이가 나를 알아볼까요
여기서는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은 「당신의 반려동물이 부활에서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단언하는 사람은 본문이 허락하는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약속을 당신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약속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보세요.
고린도전서 13:12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바울은 낯선 이들로 가득한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분적인 것'의 끝을 말합니다.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앞으로 올 세계에서 '알아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든, 그것은 지금보다 큰 것이지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지워짐'으로 향하는 곳은 없고, 모든 것이 '온전히 알려짐'으로 향합니다.
요한계시록 21:5
"And he that sat up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And he said unto me, Write: for these words are true and faithful."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 — 「모든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리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직한 답은 이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그 문장으로 재회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습관을 가진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지으신 것을 이름으로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책에 기록하시고,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하나님. 소망하려면 그 방향으로 소망하세요.
「주님, 제가 이름을 붙이기 훨씬 전부터 주님은 그 아이를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제가 안아 보기 전부터 주님은 그 아이를 책에 기록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기억함'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주님이 누구신지는 압니다.
그 아이를 지켜 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제 안에서 잠잠하게 해 주세요.
주님이 사랑하신 것이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해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 아이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
주님은 주님의 것을 이름으로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름이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 아이를 주님의 돌보심과 기억 안에 두어 주세요.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잊어버릴까 봐 두려울 때, 그 두려움도 주님이 대신 져 주세요.
아멘.」
그 아이의 이름을, 사라지지 않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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